우병우 전 민정수석 고향부터 지금까지 총정리

Posted by 토이맨
2017. 11. 24. 10:32 정치 스토리

우병우 전 민정수석 고향부터 지금까지 총정리


우병우...1967년 1월28일생 경상북도 봉화군의 교사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교육은 대부분 영주시에서 보냈다. 머리가 굉장히 뛰어나고 똑똑했으며 지역 일대에서 공부로 유명한 학생이였다고 전해진다.


학생시절 장래희망이 검사였으며 그시절 그는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당돌하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시절 그의 말과는 달리 부정부패하고 정의가 없는 국가에 이바지한 정황들이 들어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그때의 발언 역시 믿을것이 못되는데 취재프로그램의 동창 인터뷰에서 부임한 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사장에게 직접 찾아가 교체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나도 그렇고 병우도 그렇고 고등학교때 싸가지가 없었고, 그게 잘못된 거라고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영주고 졸업후 소문난 수재답게 전국 53위의 성적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 그의 나이 20세에 사법시험에 붙으며 최연소 합격 기록으로 남아있다. 고도근시에 의한 질병 및 심신장애를 사유로 군면제를 받았고 사법연수원 19기 차석으로 수료하며 검찰 특수부 계통의 검사로 활동한다.


최연소 합격에 차석수료,재벌가의 사위로 결혼까지 하게된 그는 목에 깁스를 두른듯 행동한다고 하여 별명이 깁스 라고 한다. 인성은 별로지만 뛰어난 수사능력을 높게 샀다고 전해지는데 서울지검과 대구지검을 오가며 많은 사건을 해결해냈고 두려울것이 없던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온다.



경주시 관련 수사를 진행하며 다수의 인사를 구속하는중에 정권핵심의 지역유지를 수사하다 밀양지청으로 내쳐지기 때문이다 재벌가 사위에 뛰어난 능력을 갖췄어도 그에게 없는것이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출신! 검사내부에 만연한 지연,학연 라인에 그는 속한 곳이 없었고

여러 지방의 검찰청으로 잦은 발령을 받게 된다. 





2007년 기회가 찾아오는데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파견되며 맹활약하며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로 임명된다. 이후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하며 입지를 넓혀가게 된다. 그의 집요함은 김평수 이사장 구속에서 들어났는데 2번이나 기각된 사건을 6개월간 집요하게 수사를 벌여 3번째 영장에서 구속시켜버렸기 때문,


이후 2009년 대검창청 중앙수사 과장으로 임명, 노무현 전대통령 박연차 로비 사건 수사를 담당한다. 당시 강압수사로 감찰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당시 동료의 인터뷰에 따르면 "물증은 없으나 심증은 있다.." 며 수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후 검사장 승진에 좌천되며 부천지저청장으로 좌천되는데 노무현 대통령 수사 당시 무리한 수사가 원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우병우 좌천에 대해 전 공직기강비서관인 현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내가 우병우 잘랐다. 강압수사 책임이 있는자이고 야당의 비토가 센데 뭐하러 정치적 부담을 안으며 승진시키냐" 며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당시의 인사좌천에 그는 "승진은 다른놈 다 시켜주고.."라며 굉장히 억울해했다고 한다. 2013년 변호사를 개업하며 다수의 사건 맡게 되는데 1년 순소득만 62억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여러 탈세 정황과 검사시절 수사했던 사건의 피의자와 관련한 수사를 변호한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후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해임후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 총 재산 423억 3230만원이 되어 화재가 되었다.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높은 신임을 받으며 청와대 문건유출사건등을 처리 문제는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출석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민정수석은 항명하며 사퇴하기에 이른다. 닮은 구석이 많아 리틀 김기춘으로 불렸다


청와대 입성 8개월만에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초고속 승진 이후 포스코,경남기업 압수수색을 펼친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탄원하다 결국 자살, 뇌물리스트를 남기는데 다수의 인사들과 함께 김기춘 실장도 이름이 거론되 있었다. 결국 흐지부지 수사는 종결 우병우는 민정수석으로 득세하며 실권을 잡는다.



메르스 사태 당시 가족들을 미국으로 도피시키게 되는데 당시 정부가 앞장서서 괴담유포자를 처벌하겠다고 선언한 때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도의적인 문제이나 법률적인 문제는 아니며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답변했다 2016년 7월 그의 비리가 연쇄적으로 폭로되며 안종범 정책수석과 함게 10월30일 경질되기에 이른다.



이후 모습을 감춘 그는 청문회 출석을 요구 받지만 출석하지 않았고, 다수의 인사들이 그의 제보에 현상금을 걸었다.네티즌 수사대들이 자녀의 대학 추가시험날에 모습을 들어낼것에 압박을 느껴 출석했다는 설도 있다.그의 당당하다못해 오만하기까지한 출석 모습에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으나 현재 그는 국정농단 주요인사중 하나이지만 유일하게 불구속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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