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출생,V3부터 국민의당 대표까지

Posted by 토이맨
2017. 11. 27. 11:40 정치 스토리

안철수 출생,V3부터 국민의당 대표까지



1962년 경상남도 밀양, 병원집의 장남으로 태어난 안철수는 중학생 전까지는 중간정도 성적의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부산중앙중,부산고를 졸업하는데, 내성적인 성격, 하얗고 머리가 노란편이어서 흰둥이로 자주 놀림을 받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작은 차이라면 굉장한 독서광으로 매일 몇권의 책을 빌리던 다음날 모두 읽고 반납했다고해요. 그래서 도서관사서는 장난치는건 아닌가 의심을 사기도 했다고 합니다. 피만보면 무서워하는 성격탓에 과학자를 꿈꿨고 남다른 독서량은 고등학교 성적에서 일취월장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고 전해집니다.



1982년 본과 1학년,하숙집 친구가 가져온 컴퓨터에 빠지며 본격적으로 컴퓨터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1988년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코드공부를 한 그는 그일을 계기로 백신을 계발하게 되는데 새벽3시에 일어나 3시간 백신계발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의사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본과 2년째에 지금의 아내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를 만나 "내가 친구해줄까요?" 라는 말로 교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생활을 7년간이나 반복하며 무료로 백신을 배포하였고 1988년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지의 7월호에 그의 백신이 소개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세계최초의 백신은 1987년도 추정으로 매우 빠른편이라고...



군대시절 그는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대위로 전역했는데,어머님이 평생 존댓말을 하여

후임병에게 존댓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80년대말 나타난 브레인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인Vaccine을 만들었고 후에 버전을 올리면서 Vaccine 3, 즉 지금의 V3가 탄생되기에 이릅니다. 




제대후 그는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하고 백신의 필요성만으로 설립하여 초기 회사 운영은 늘 적자였다고 합니다.  국내에 경쟁사가 없음에도 무료로 배포를 이어가다가 윈도우 시대에 유료화를 시작,당시의 여론과 언론에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형체가 없는 소프트웨어를 돈받고 판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죠



해외기업 McAfee로부터 1000만불의 인수제안을 받지만 함께 고생한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라 매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초기직원 100명에게 주식을 무상으로 나눠주며 보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료백신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되려 공부를 이유로 사장직을 물러나고.이후 V3의 내리막을 걷기도 합니다.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과정을 10: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강경준이 밝힌 내용에는 안철수가 나온 와튼스쿨은 EMBA로 사람들이 말하는 와튼과는 다르다고 말하며 알려지기도 합니다. 트럼프와는 동문도 아닌셈이라고 .....어쨋든 유학생활을 마치고 2008년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2011년에는 서울대 대학원 원장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대학생에게 신드롬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현시대의 멘토,힐링 단어 이전의 롤모델로 평가받는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당시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대단한 유명세를 탔습니다.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현상','안풍'등의 신조어를 탄생시켜며 50%가 넘는 지지를 받았음에도 박원순 시장의 손을 들어주며 첫번째 양보가 시작되죠



1500억 상당의 안랩 소유주식을 사회에 환원, 그의 인기 역시도 절정을 찍는다. 정치개혁을 선언하며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싸우는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며 문재인에게 두번째 양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양보의 아이콘" 이라는 별명도 가지게 되죠. 2012년 도올 김용옥이 "안철수는...하느님의 축복"이라 칭찬하며 그의 사인과 책을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상했다는 인터뷰 내용도 있습니다 ㅎㅎ



2013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당선,야당의 위기였던 시절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로 활동 하지만 재보궐선거에 실패, 4개월만에 사퇴하게 됩니다. 당내에서 문재인 세력과 혁신을 놓고 대립하다 2015년 12월 탈당, 국민의 당을 창당하며 비관적 여론에도 38석을 얻어 녹색바람을 일으키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애매한 행보를 보이며 간잽이,간철수 등의 조롱섞인 비아냥을 듣기도 하였지만 반기문 불출마,황교안 대선불출마를 맞춰냈고 지지율차이가 컸음에도 문재인과 양자대결등을 예언 적중하며 안스트라다무스,안파고로 불리기도 합니다.



지금의 다당구도를 만든 인물이며, 그의 정치생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근에는 조작과 민심을 잃어버리며 국민의당은 가장 낮은 지지율을 달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철수가 인터뷰중 남긴말로 마무리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도 늦지 않을것이다"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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