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검사라 불렸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초년시절

Posted by 토이맨
2017. 11. 30. 13:39 정치 스토리

모래시계 검사라 불렸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초년시절



역대 한국드라마 시청률 순위 3위, 최고시청률 64.5% 드라마 "모래시계" 당시 인기는 방영일에 도로에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매우 높았던 드라마, 빠른귀가를 부른다고 해서 귀가시계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모래시계의 연관검색어로 홍준표의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바로 드라마의 모델이 홍준표

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생각하기 힘든 그림이기도 한데요. 그럼 홍준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가난한 집의 아들로 먹지못해 키가 작았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누명을 보며 검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학비 문제로 명문고가 아닌 일반고에 진학, 대학에서 5년만에 어렵게 사법고시 통과합니다. 





청주지청에서 2000건의 사건을 해결하며 검사들의 엘리트 코스인 울산지청에 입성합니다. 당시 전두환의 누나 '전명렬'이 진주시장에 압력을 넣어 골재채취권 부당이익 정황을 포착 조사하려 하지만 안기부와 선임 검사의 압박으로 제지당하며 전명렬 소환에 실패합니다. 



검사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책감에 간섭을 배제하고 수사하는 방법을 알아내는데 몰두 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전두환 가족과 관련한 수사를 지속적 진행했다고 합니다. 




전두환 사돈이 투자한 회사가 부도나자 청와대 민정비서실 대통령 친인척관리담당관인 서정희가 회사 소유 부동산 처분하며 토지 매매금 일부를 횡령한 사실을 조사후 구속해내는데 성공하며 수사에 속도가 붙게 됩니다. 




연이어 전두환 외조카인 김영도의 뇌물수수 사실도 적발,구속하는데 성공합니다.  전두환의 형 '전기환'의 노량진 수산시장 경영권 강탈 의혹 역시 적발 구속하는데 성공합니다. 연달아서 수사에 성과가 나게 되면서 그의 활약을 반대하며 제지하던 검찰수뇌부와 청와대의 만류에도 수사를 강행하자 형사부로 좌천성 인사를 맞게 됩니다. 





의지대로 수사하던 홍준표는 미운오리가 되는데 형사부 좌천에도 모자라 광주지검 강력부로 좌천된 것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권아래 눈에 띄는 활약을 하게 되는 것이죠.




국제PJ파가 일본 야쿠자와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하여 일시에 덮쳐 일망타진에 성공하며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지검 강력부로 귀환하게 됩니다. 연속해서 파키스탄 조폭 13명을 적발 체포해냈는데 3명의 사형,나머지에 15년형과 함께 추방해낸다.




범죄와의 전쟁 한가운데에선 중요한 인물로 인생사건을 맡게 되는데 ...바로 '1조원대 슬롯머신 사건' 정권과 결탁한 정덕진 일파의 슬롯머신 사건으로 시상률 조작부터 온갖 불법을 일삼았던 사건, 연루된 인사만 안기부,경찰청,검찰 고위층 간부에 뇌물수수혐의까지 더한 사건,



갖은 협박과 압력에도 타협없이 모두 구속 조치해냈다. 화룡정점은 노태우정권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을 구속한 것, 박철언은 슬롯머신 업자로부터 5억원 수수혐의가 인정되어 의원직 박탈과 함께 1년 4개월 징역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일화가 한PD로 부터 드라마로 제작되며 그는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떨친다.하지만 내부 관련자 상관없이 칼을 휘두르던 그는 여전히 검찰내 미운오리 신세,  인사이동을 통해 좌천에 좌천을 거듭하던 그는 10년의 검사생활을 뒤로하고 변호사를 개업하며 모래시계 검사의 삶은 끝을 맺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검사시절의 홍준표, 대통령 출마시절에도 정동진등을 찾으며 모래시계 검사를 공공연히 노출시기도 했습니다. 향간에는 모래시계 검사의 모델이 홍준표 한명이 아니라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다수의 검사중 하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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