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유승민-박정희 유수호 아버지부터 내려온 악연

Posted by 토이맨
2017. 12. 5. 13:07 정치 스토리

박근혜 유승민- 박정희 유수호 아버지부터 내려온 악연



2015년 11월 8일 유승민의 아버지 고 유수호 의원의 장례식이 있던 날입니다. 한장의 사진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한때 비서실장으로 가장 가까이 지냈던 관계는 틀어지며 악연으로 불렸습니다. 장례식 화환 어디에도 박근혜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이를두고 대를 잇는 악연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어떤 이유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박정희,유수호..그리고 사법파동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의 승리로 끝맺는듯 보입니다.하지만 야당에서 부정선거 주장이 제기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실제 울산에서 득표율 허위조작 발표 및 투표용지 부족으로 개표 중단이 발생했죠. 논란이 커지며 결국 재판으로 회부됩니다. 이 재판의 담당판사는 유승민의 아버지 유수호 부장판사 



"피고인들은 공명선거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고 유권자의 주권을 변조 조작하여 민주질서를 파괴한 행위를 벌였기에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는 선고문과 함께 윤동수 전 울산시장에  징역 3년 구속을 처벌합니다.


이 판결로 부정선거 인정과 함께 박정희의 정통성을 훼손받는 결론이 됩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다 구속된 부산대 총학생회장 김정길의 실질 심사를 유수호 부장판사가 맡게 됩니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석방처리 해버립니다.그는 훗날 행정자치부 장관이 됩니다.독재정권에 반하는 결론을 내린 유수호 판사는 박정희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결국 1972년 자신의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유신헌법을 강행하고 사법파동을 일으킵니다.

자신의 정권에 반하는 판사 41명을 면직 하는데 여기에 유수호 판사도 포함되며 법복을 벗게 됩니다.






30년을 돌아 이어지다.



이회창의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한 유승민,박근혜의 삼고초려 영입제안에 첫 제안은 거부했으나 결국 수락하며 2005년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인연을 맺습니다.이후 친박의원의 지원을 등에 업고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체급을 키우게 됩니다.



멀어진 계기가 된건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둘사이는 멀어지게 됩니다."박 위원장과 대화할때 한계를 느낀다.박위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도울 기회는 없을 것이다" 는 인터뷰로 경선 캠프에 불참하게 됩니다.



이후 박근혜가 당선되고 교섭단체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 면서 강한 비난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통찰을 높게평가한다는 말을 뱉으며 반대노선을 걷게 됩니다.


박근혜가 강하게 비난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친박세력과 박근혜에 강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유승민 책임론과 배신의 정치로 원색적 비난을 받으며 원내 대표직을 사퇴하며 일단락 되는듯 합니다.



하지만! 당내 공천과정에서 비박이 철저히 배제되며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하게 됩니다.  기울때로 기운 민심은 유승민의 당선으로 응답합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승민이 당선됩니다.  하지만 탈당인사들이 곧바로 복당하며 역시나란 비난을 피할수가 없게 되었는데요. 유승민도 마찬가지였고 비난을 피할순 없었죠. 



바른정당을 창당하며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합당한다면 실망이 더 클것 같군요. 강한 존재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30년차를 두고 묘하게 닮은 악연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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