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대우그룹이 파산한 이유

Posted by 토이맨
2018. 1. 26. 11:48 이슈 스토리

잘나가던 대우그룹이 파산한 이유


지금은 중소기업 수준의 가전회사 또는 해양조선 회사 정도로만 알려진 대우. 한때는 국내 TOP3 그룹의 위엄을 자랑하던 대우그룹이 무너진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61년 잘나가던 한성실업의 사원으로 입사, 엄청난 세일즈 능력으로 30대초반에 임원으로 승진한 남자김우중 회장, 임원직을 박차고 나오며 그가 던진말 "더 이상 월급쟁이는 하지 않는다"



1967년 동업자 4명과 함께 무역회사 '대우'를 설립합니다.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소규모 회사, 그들의 뛰어난 세일즈 능력은 창업 첫해 57만 달러 수출실적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이룹니다. 당시 섬유수출에 혈안이 된 한국정부는 대우그룹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며 큰 성장을 이룹니다. 



폭발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해외지사를 크게 늘려가던 대우, 갑작스런 성장의 배경은 무분별한 대출로 키운 몸집, 당시 대출은행이었던 한국 제일은행은 대출 상환을 미뤄주는 의외의 선의?를 배풉니다. 이를두고 여러썰이 존재하나, 가장 유력한 썰은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은사가 김우중 회장의 아버지였던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는 썰이 크다.




당시 정부는 국내 남아있던 친일기업들을 다수 보유중이였는데 다수를 대우에 매각하기에 이릅니다. 고려피혁,쌍미섬유 등을 인수, 대출기한을 미루면서도 몸집 불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대우, 1차 오일쇼크로 전세계 경제가 흔들리던 그때, 체이스 맨하탄 은행에 700만 달러를 대출하며 위기를 넘깁니다. 





국내 최다기간 대통령 기록의 박정희는 대우기업에 옥포조선소, 새한자동차, 한국기계공업등을 대우에 매각하며 또 다시 몸집을 키우게 됩니다. 지금도 해외에 대우 그룹의 모습을 볼수가 있는데, 1980년대 공산주의가 붕괴되며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는 명언을 남기며 다수 국가에 진출합니다. 





진출 국가만 하더라도, 우즈베키스탄, 루마니아,중국,러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체코,폴란드 등등... 짧은 3년의 기간동안 80억 달러의 엄청난 금액을 투자, 대우 기업의 과다대출은 여기서 들어나는데, 투자금액의 68억 4000만 달러는 대출이란 사실



한국 최대의 위기로 불리는 imf가 닥치며 최대의 고비를 맞는 대우, 당시 국내 중견 기업, 대기업 역시 쓰러지던 상황에서 과다한 회사채를 발행했던 대우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급하게 대우차를 매물로 올리며 협력사였던 GM이 관심을 가집니다. 국내 상황에 무지했던 GM은 다급했던 대우의 태도에 의심을 품었고, 이웃나라 일본 노무라 증권에 의뢰, 리포트 결과를 확인, 인수철회



대우는 전자 파트를 삼성에 매각시도중이였는데, GM의 인수거부 소식을 듣고 전자 인수 거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기를 맞습니다. IMF 1년차 수출 호조로 조금씩 위기를 극복중이던 한국 기업들, 해외에 엄청난 투자를 했던 대우 역시 호조가 기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옛 공산권 국가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인수에는 성공했으나 돈되는 사업은 없어서 채산성이 악화되기에 이릅니다. 인수에만 성공한 슬픈 사연! 예로, 폴란드 자동차 회사 FSO 기업의 인수건으로 GM과 포드는 공장 채산성을 확인하고 철수한 공장을 대우가 인수하며 공장가동률 40%, 매년 수억달러의 손실을 맞습니다. 



대망의 2000년 한국정부의 구제손길을 회계조작으로 화답?하며 정부가 대우에 쏟아부은 68조원의 금액에도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기업 경영의 핵심은 세일즈라지만, 내실을 튼튼히 해야한다는 교훈을 남긴 사례로 남았습니다. 대우의 빌딩은 미생의 배경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해외에 체류하며 인재양성 중이라고 합니다. 불명예스럽게도 국내 미납 세액 368억원으로 체납세액 2위에 기록 되었습니다. 



정부가 대우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고,대우 신화로 불리는 존경받는 기업가, 하지만 막대한 세금이 쏟아부어진 점, 많은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죠.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수도 있으니 참고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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