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의 유일한 혈육을 돕는 착한 회사

Posted by 토이맨
2018. 3. 5. 21:24 이슈 스토리

1920년 18세라는 어린나이에 고된 고문으로 생을 마감한 유관순, 선교사의 권유로 이화학당 초등부에 그저 학업에 열중하던 소녀, 3.1운동에 참여해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고등학생 소녀는 옥중 고문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런 그녀의 오빠,동생,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두 독립운동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아버지 유중권씨는 흥호학교를 설립하였고 교회에서 일하던 삼촌의 영향인지, 교회와 가까웠던 유관순, 

어느날  엘리스 샤프 선교사의 도움으로 어려운 형편에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3.1운동이 열린다는 소식에 다칠것을 우려한 교장은 아이들을 다그치지만 담을 넘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유관순과 친구들.. 



독립운동의 여파가 퍼질것을 우려한 총독부는 임시 휴교령을 내리고 천안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합니다. 이때 일본군에 의해 부모님 두분은 모두 목숨을 잃고 유관순은 체포되죠.유관순의 혈육은 모두 독립운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조카, 유장부씨, 가족들의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자랑스런 훈장을 받았지만, 단지 그것뿐, 보상금은 제로.




독립유공자예우 시행령상 '순국선열 유족중 최연장자 한명에게 최대 월 244만 5000원을 지급' 항목이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이 조항 하나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유관순 열사의 조카 소식을 듣고 살고계신 집의 아파트 보수공사를 무료로 지원한 LG, 엘지그룹은 독립운동 기념관 보수 및 유공자의 후손 집수리등을 작게나마 지원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



LG는 유공자 이외에도 각종 의인과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선전없이 도와주는 것으로 유명한 기업, 그 시초는 설립자 구인회 회장과 그의 부친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합니다. 두분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던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현재까지도 두분의 정신은 그대로 내려와 독립유공자와 후손,그리고 사회에 이바지한 의인들에게 지원하고 있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은 사실 아직까지도 맞는말입니다. 자신의 생명, 모든 재산을 걸고 만들어낸 독립 그래서 그 후손은 지금도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하지만 일제에 협력하고 앞장섰던 매국노 친일파들은 막대한 부를 물려받고 여전히 잘 살고 있습니다. 



독립후 청산하지 못한것이 지금까지 내려왔는지도 모릅니다. 물건을 비싸게 팔도록 하는 이상한 법은 잘 만들면서 친일재산 환수법은 왜 통과되지 못할까요? 반대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논리일까요?ㅎㅎ항일운동에 가장 큰 역할을 한것으로 알려진 김원봉 해방후 친일파 앞잡이가 중요요직을 맡아 자신을 고문하는 것에 큰 충격을 느끼고 북한으로 잠적했다고 하죠



돌아가신 애국자분들은 지금의 상황을 알았더라면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는 우리나라에서유공자분들을 후원하는게 이상한 회사로 비춰집니다. 언젠간 이런일들이 당연한 사회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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