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후 방에서 노랫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왔다

Posted by 토이맨
2016. 5. 14. 20:47 카테고리 없음

 

 

 

 

 

 

 

몇 분후 방에서 노랫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왔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그 노래는 애창곡순위 상위권의 터줏대감, 관광버스에서 술 취한 아저씨들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트로트가요인 남행열차였다. 엄중한 분위기 사이로 흐르는 구수한 멜로디 때문에 조문객들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놀란 상주가 방으로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할아버지에게 귓속말로 뭐라 말했건만,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떠나버린 영숙이도 흐르네.” 그는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게다가 원곡을 가뿐히 무시하는 개사솜씨는 누구도 그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다섯 평 남짓한 방안에는 왼팔에 검은색 두 줄이 그어진 삼베완장을 찬, 나이가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흰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노인이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상주는 노인에게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권유는 도무지 먹혀들지 않았다.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노인은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불렀다. 그의 두 볼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물로 축축해진 두 눈가는 언제부터 울었는지 애벌레처럼 통통하게 부어 있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때 마다 입에서 풍기는 쓰디쓴 소주냄새가 영정사진 앞에서 맴돌았다. 상주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이 소란스러워 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머니에게도 문상객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노인을 밖으로 끌어내기로 결심했다.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라 함부로 대하기 힘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노인의 겨드랑이로 손을 집어넣고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몸무게가 의외로 무거웠는지 좁은 보폭으로 뒷걸음질 치며 방에서 끌어냈다. 상주의 표정은 난처했지만 행동에서는 강압적인 힘이 느껴졌다.

 

 

깜빡 깜빡이는 꺽 희미한 꺽 기억 속에 꺽……딸꾹질 소리가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추임새 인 것처럼 절묘하게 들렸다. 노인은 물에 젖은 걸레처럼 축 늘어진 채로 끌려 나오면서도, 중대한 의무인양 책임감 있게 노래를 계속 이어나갔다. 어쩔 수 없이 상주는 노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노인은 강한 억압을 뿌리치기위해 몸을 뒤틀었지만 20대 사내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안은 잠깐의 고요함이 흘렀다. 노인이 노래 부르는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는지 상주는 굳건히 틀어막은 손을 때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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