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해진 몸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Posted by 토이맨
2016. 5. 29. 14:40 카테고리 없음

 

 

 

 

 

 

 

상쾌해진 몸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어제처럼 반투명한 달이 떠있다.

아침부터 쓰기 시작한 글은 점심 무렵이 되어서도 진척이 없었다. 질근질근 씹혀진 볼펜 머리가 불안함의 정도에 맞춰 입 안을 헛돌고 있지만 시간에 쫓기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의 무료함은 다급함보다 사람을 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다. 뭘 써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볼펜 대신 담배를 입에 물고 옥탑방의 문을 열고 나왔다. 봄날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제법 좋은 날씨였다. 12, 문턱에 걸터앉아 피는 담배 맛은 햇볕에 바싹 마른 빨래 같았다. 깍지를 끼고 소리가 나도록 온 몸을 비틀어본다. 오전 내내 책상 앞에만 움츠리고 있었던 몸에 햇살이 한껏 스며들었다.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좀처럼 풀리지 않아 답답했던 기분도 털어낸다. 옥상의 낮은 담장 너머에는 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지금쯤 고시촌 사람들은 학원에 있거나 일터에 있을 시간이다.

 

 

 

 

 

새벽 별을 보며 내일을 꿈꿨다던 고시촌은 이제 오늘만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 돼버렸다. 생활비를 벌기위해 막노동판을 뛰고 돌아와 소주병을 끼고 쪽잠을 자는 아버지들과 식당 허드렛일을 하면서 연락 한 번 없는 자식걱정을 하는 어머니들이 사는 곳이다. 저녁마다 차려입고 나가, 이른 아침이 되서야 돌아오는 그녀들과 학원에서 여학생 허벅지만 쫓는 그들이 사는 이곳은 항상 그늘져있어 햇살도 피해가는 듯 했다.

 

 

 

 

내버려둔 음식처럼 사람도 썩어가는 곳, 그 중에 내가 살고 있는 옥탑방은 그나마 햇살이라도 한껏 받을 수 있는 흔치않은 곳이다. 널찍한 마당에 빨래걸이까지 있어 아래층 고시원에 비하면 불법건축물이라는 것 말고는 좋은 조건이라며 집주인은 말했었다. 하지만 빛이라고는 형광등 밖에 비치지 않는 고시원에서 옥탑을 특급호텔 못지않다고 해봤자 이곳이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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