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종이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Posted by 토이맨
2016. 6. 6. 11:27 카테고리 없음

 

 

 

 

 

 

 

 

이곳은 종이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청소는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으며, 눈을 감을 시간도 없었다. 저 고고한 종이를 이 집에 두기 위해서는 이 집도 그와 같은, 같지 않더라도 최대한 깨끗해야 된다. 그런 압박감을 가지고 시작한 청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돼지우리는 점점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청소가 끝날 때에는 이곳이 내가 살았던 곳인가 신기해질 정도로 바뀌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나의 종이를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종이를 얻고 나서 즐거움에 가득 차서 집으로 달려오기만 했지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종이를 앞에 두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파일에 조심스레 끼워둘까. 그것을 보이지 않게 보관한다면 종이에 대한 모욕이다. 벽에 압정으로 꽂아둘까. 종이에 손상을 줄 수는 없다. 코팅을 해서 보관할까. 코팅을 하다 실패하면 볼품없는 작품이 되어버린다. 접어서 학이나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보관할까. 그렇다면 원래 찬란하게 빛나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빛이 나게 되어버리고 그것은 종이를 수집한 의미가 없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그와 동시에 반대 의견이 제의되며 제대로 된 결과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몇 분. 우연히 내가 가지고 온 종이와 똑같은 크기의 한 그림이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액자는 보호유리를 떼고 붙일 수 있어서 그림을 강화유리에 통과된 그림과 원래 그림을 구별하여 볼 수 있었고, 그 존재는 나의 시각을 통해 뇌까지 흘러 속삭였다. ‘지금 나를 써.’

 

 

 

 

생각이 들었으면 실천한다. 바로 액자를 떼서 뒤에 입구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뒤를 보았지만,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가 사놓고서는 그림을 넣는 입구가 어딘지도 모른다니! 조금만 더 한다면 완벽한 수집 장식품이 완성된다는 조급한 마음에 액자를 이리저리 뒤져, 액자의 옆에 나 있는 틈으로 그림을 넣는 액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림을 밀어내어 액자에서 빼내 그대로 그림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이런 그림 따위 이 종이에 비해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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