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말했던가 선배와 나의 단짝 저희 이야기 말이다

Posted by 토이맨
2016. 6. 12. 15:31 카테고리 없음

 

 

 

 

 

아 내가 말했던가 선배와 나의 단짝 지희 이야기 말이다

 

 

 

 

 

 

 

 그래. 바로 그 일로 인해서 나는 밥을 먹지도,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어느 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교외의 산을 찾았다. 그 산의 중턱에 작은 절이 있었다. 나는 그날 이전까지는 합장조차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엇에 등을 떠밀리기라도 하듯 부처님 앞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그 밤에 모처럼 잠을 푹 잤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틈이 날 때마다 그 절을 찾았다. 절을 찾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주지 스님과도 자연스레 낯을 익히게 되었다.

님프에서 소개한 나의 맞선 상대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다. 페인트 공장의 기술자, 세무 공무원, 보험 설계사, 초등학교 교사, 측량 기사, 특수강 회사원, 경찰……. 비닐하우스 농사를 크게 짓거나 돼지와 닭을 키우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실 내 처지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만큼 여유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사람을 별로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만났다. 그러나 나와 걸맞은 상대를 만나는 일이 생각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하는 일이 그럴 듯하다 싶으면 나이가 너무 많았고, 나이가 마음에 들면 이번에는 벌이가 별로 신통치 않아 보였다.

그러던 중에 J를 소개받았다.

 

 

 

 

J와 나는 만나기 전에 여러 통의 편지를 서로 주고받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누가 먼저 그런 제의를 했는지는 통 기억이 없다.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편지를 매우 특이하게 쓰는 편이다. 그가 내게 보낸 모든 편지에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글도 제법 쓰는 편이어서 국문학을 전공한 나보다도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여러 번 있다. 색다른 그의 편지는 내 마음을 사로잡을만했다. 게다가 그는 언제나 새하얀 종이편지지에 편지를 썼다.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대세인 요즘에 종이편지를 받는 것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에게서 받은 편지가 열 통이 넘도록 J는 내게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결혼정보회사의 소개로 알게 된 우리가, 단지 편지만 주고받으며 허송세월을 보낼 처지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의 편지를 받는 것이 매우 즐거웠지만, 그런 한편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만나자는 제의를 하기는 싫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바뀌었고, 다시 몇 달이 더 지났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던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드디어 J로부터 만나자는 편지가 왔다.

그의 편지에는 우리가 만날 날짜와 시간, 장소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거기에 적힌 날이 1224, 그러니까 바로 어제였다. 장소는 서울 역에서 지하철로 사십 분 정도 떨어진 곳의 어느 지하다방이었다. 그랬다. 그가 적어 보낸 만남의 장소는 카페도 아니고 레스토랑도 아닌, 다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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