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다 읽은 나는 얼떨떨했다

Posted by 토이맨
2016. 6. 12. 15:53 카테고리 없음

 

 

 

 

 

 

편지를 다 읽은 나는 얼떨떨했다

 

 

 

 

 

 

 

왜 좀 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는 걸까?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왜 하필이면 거기서 만나려고 하느냐는 따위의 말로 따지고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따지고 들다 보면 올해 안에 그를 만날 수가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기다리던 날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다. 하필이면 오늘 새벽에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큰아버지는 두 달쯤 전에 간암으로 입원했었다. 큰아버지가 입원할 당시에 담당의사가, 길어야 육 개월 정도 살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하긴 했었다.

식구를 모두 앞세운 큰아버지는 사십 년이 넘는 세월을 혼자 살아오셨다. 아내는 결혼하고 십 년쯤 되었을 때 폐결핵으로, 딸도 없이 달랑 하나인 아들은 군에서 제대한 다음 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형을 극진히 돌보셨다. 아버지 자신도 위암 수술을 받은 지 이태밖에 안 되었지만, 밤낮으로 형의 머리맡을 지키셨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종종걸음을 치곤 하셨다.

큰아버지 돌아가셨다.”

예에?”

누구 문상 올 사람도 없을 테니 이틀 장으로 할란다.”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아버지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이어 말씀하셨다.

내일 10시에 맞춰 온나. 오늘은 와 봐야 별 소용도 없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외롭게 살다 가신 큰아버지를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내려가 봐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런데 J와의 약속 또한 큰아버지의 장례 못잖게 내겐 중요했다. 나는 거의 정오가 다 될 때까지도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백 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기로 했다. 마음이 복잡할 때에 나는 때때로 무식하다 싶을 만큼 엉뚱하고 단순한 방법을 쓰곤 하는데 동전 던지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숫자 100이 나오면 서울로 가고, 한글 백 원이 나오면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정했다. 나의 운명을 그 작고 동그란 것에 내맡기는 기분으로 동전을 던졌다. 100이 나왔다. 내 얼굴이 잠깐 환해졌다가 다시 컴컴해졌다.

나는 장롱에서 모직 바지 정장과 코트를 꺼냈다. 모두 검정 일색이었다. 화사한 색깔의 옷들에 자꾸 눈길이 갔지만 검은 옷을 그냥 입었다. 어쩌면 서울에서 곧장 영안실로 가야 할지도 몰라서였다.

게시글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