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하는 수 없이 걸어서 가기로 한다

Posted by 토이맨
2016. 6. 20. 19:59 카테고리 없음

 

 

 

 

 

 

 

그는 하는 수 없이 걸어서 가기로 한다

 

 

 

 

 

 

 

그가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누군가 건너편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긴 생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고생이다. 그는 그녀의 자전거를 보고 헛기침을 했다. 그것은 그의 자전거였다. 그녀는 그를 잽싸게 지나쳐 버린다. 허탈감에 빠진 그는 멍하니 서 있다. 눈앞에서 그의 자전거가 사라져간다.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라진 자전거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아무래도 이 의사가 하는 일은 여기까지였던 모양이다.

이야기가 그대로 끊어져 침묵이 계속되자 D는 원래의 자신의 페이스로 되돌아가 평소 하던 것처럼 최소한의 인사만 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시선을 돌리다 그렇게 되었다는 듯 의사의 책상위에 눕혀진 검은 삼각기둥을 슬쩍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신경정신과장 ' 라는 글자가 은빛으로 파여 있었다.

 

 

 

 

D가 문을 나서 접수실로 가자 그곳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듯 의자에 앉아 있었다. D는 병원에서 일을 일찍 마치고 나가야 할 이유가 별달리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달리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의자에 앉아 있기로 하였다. 뒷목을 주무르며 목을 푸는 듯 주변을 둘러보자 늙수그레한 여자와 그녀를 부축해 왔음직한 장년 남녀가 그녀를 돌봐주고 있었고, 다소 산만하게 다리를 파닥거리는 어린 남자를 보호자로 보이는 여자가 야단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도 무언가 할 의욕도 없었던 D는 대기자를 위해 마련된 듯한 책장에서 얄팍한 책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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