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기억의 저편에서 그녀가 차츰 걸어 나온다

Posted by 토이맨
2016. 7. 6. 12:53 카테고리 없음

 

 

 

 

 

 

 

어스름한 기억의 저편에서 그녀가 차츰 걸어 나온다

 

 

 

 

 

 

 

 

 

대학교 1학년 때, 여전히 우리는 살갑게 보듬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간간히 그녀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사라졌다. 몇 달이나 지난 후에 알게 된 그녀의 행방은 편지를 통해서였다. 대학에 들어와 자취하기 시작한 나의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단정하게 눌러쓴 편지 한 통이 우편함에 들어있었다. 그녀는 호주에 있었다. 호주라, 나는 책상 앞에 놓여있는 작은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렸다. 워킹 홀리데이라나. 제법 그럴듯한 이름으로 그녀는 한국을 떠났다. 그녀답지 않게 합법적이군, 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2년 뒤에 그녀는 불법 체류자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편지는 가끔씩 왔다. 답장을 보낼 때도 있었고, 보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가끔 그녀는 부탁을 했다. 고추장을 좀 보내달라는 거다. 호주에도 팔기는 하는데 그 맛이 안 난다고 했다. 그 먼 타지까지 가서 고추장을 찾다니. 완전 한국 사람이잖아. 하고 나는 크게 웃었던 것 같다. 그토록 도망치려던 한국인데, 밖에 나가 매운 것을 찾다니. 우습다가 서글퍼졌다. 혹시 끝내 벗어나지 못했나. 차마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흔히 불행한 가정사라고 한다. 그녀에게 그런 그림자가 있는 듯한데, 나는 묻지 않았다.

 

 

 

 

 

 

 

 그녀도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생물학적 존재로조차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이 주워온 자식이라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있어 아버지란 존재는 자신이 이길 수 없는 강한 존재여서, 어디로 도망가든 그 사람이 다 알고 쫒아 올까라고 믿고 있었다. 도망갈꺼면 외국으로 가야 돼. 그 남자, 영어를 못하거든. 그렇게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였다. 그래서 그녀가 호주에 있다고 해도, 불법 체류자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놀랍지가 않았다.

게시글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