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최악의 거짓말 2(이승만,1987 박종철 사망사건,가습기살균제)

Posted by 토이맨
2017. 11. 30. 11:51 정치 스토리

한국 현대사 최악의 거짓말 2탄(이승만,1987 박종철 사망사건,가습기살균제)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했으니,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이승만


꼬여버린 한국사의 시작, 오래된 자료탓에 평가가 엇갈리나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일제강점초기 미국에서 활동, 3.1운동을 게기로 임시정부 초대국무총리를 지낸다.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실질적인 임시정부 방문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지는건 함정,




일본 패망후 38도선으로 남북이 갈라지며 미군정이 들어선다.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미군과 함께 입국한 이승만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의 감독아래 첫선거에서 상대후보인 최능진은 물밑공작으로 후보등록이 무효화되며 이승만은 무투표 당선된다.



철저한 반공노선을 지향하며 반민족행위처벌법과 조사위원회를 결성했지만 사실상 처벌이 아닌 친일파를 품으며 친일파청산에 실패한다. 당시 미군력을 제하면 북한에 비교도 안될만큼 군사력이 떨어졌지만 북진통일을 주장하였고 하루만에 북한 점령을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물론 그 주장의 이유는 알수 없다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며 비밀리에 군사력을 증진한 북한이 무서운 속도로 남하하기에 이른다. 이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군이 승전을 거두고 있으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

는 방송을 내보내지만 27일 새벽2시에 대전으로 피난을 떠난다. 그 시기에도 방송은 계속됬다고 한다.


국회에서 서울사수를 결정하려 통보하러 왔지만 대통령은 알리지도 않고 대피한 상황 물론 자리에 없었다고 한다. 신속한 그의 피난에도 방송은 계속되었다. 대전에서 kbs 과장을 불러 그의 방에서 직접 방송을 진행,내용은 아군이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안심하라는 내용을 계속 방송시키기에 이른다. 




피난시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탈출했다고 전해지며 자세한 피난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일본으로 망명신청을 했다는 의견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그만큼 비밀리에 신속하게 움직였음을 알수가 있다.


휴전후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 진보당 사건을 일으켜 조봉암을 사법살인, 정치깡패, 경찰을 동원해 야당의원 협박후 발췌개헌, 1954년 사사오입 개헌등  독재정치를 이어갔다.





결국 419혁명으로 이어지며 교수들의 시국선언부터 미국 대사관마저 지지철회하며 극한의 상황을 맡게 된다. 4월26일이 되어서야 유혈사태의 심각성을 알게된 그는 다친 학생들을 보며 상황을 인지했다고 전해진다.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는 성명문 발표후 탄핵전 하야했다.이후 미국으로 출국,정부의 반대로 한국땅을 밟지 못했고 1965년 7월 19일 하와이 호놀룰루 요양원에서 사망,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 강민창 치안본부장 (1987 박종철 사망사건)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과 대립이 심했던 전두환 정권말 사건이다. 1987년 1월 14일 경찰 대공수사관들은 피해자 박종철을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 시울대 민추위 사건의 박종운의 소재에 대해 추궁했고 수사관들은 그의 옷을 벗겨 여러차례 물고문을 반복하였다고 전해진다. 의자에 결박된 상태의 박종철의 다리를 들어올려 물고문을 한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턱이 욕조에 크게 눌리며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의식을 잃게 된다. 당황한 수사관이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사망하며 향간에 논란이 일어난다.하지만 병원에서 숨진것으로 조작하려 했으나 근처 종교단체가 폭로, 결국 취조중 사망한것으로 은폐 축소하려 시신을 급하게 화장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수사발표에서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고 거짓 시안하는 바람에 정식 사인으로 발표된다.당시 발표문에는 "아침식사로 나온 밥과 콩나물국을 먹다가 입맛이 없다면서 냉수 몇잔을 마신뒤 소재에 대해 심문도중에 억소리를 지르며 쓰러졌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했다"





당시 공안부 최환 부장검사의 지시로 진실이 밝혀졌고 당시 담당 고문경찰 2명을 구속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축소은폐란 사실이 들어난다) 민주화운동가 이부영이 수감도중 교도관으로 부터 전말을 듣게되고 우호적이였던 교도관 안유,한재동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후에 박종철을 고문했던 수사관을 고문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이 사건을 계기로 6월 항쟁이 발발하고 제5공화국은 마감된다. 현재 화장되어 임진강에 산골하였다. 그를 기리기위해 모란공원 묘역에 가묘가 있다. 서울대 인문대 중앙도서관 사이에 그의 흉상이 세워져있다고 한다. 





"인체에 안전, 아이에게 안심"

                                                    -옥시 및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한국에서 벌어진 21세기 최악의 환경재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접수에 따르면 239명 사망, 폐질환 1528명이다  (집계되지 않은 피해사례는 약 800만명으로 보고 있으며 안방에서 벌어진 세월호 사태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건강이 떨어지는 영유아와 산모라는데 있으며 폐질환 환자가 2011년 5월을 기점으로 대량 발생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정체불명의 폐질환 환자가 급증한것에 주목한 서울아산병원의 홍수종 교수와 그의 동료들의 노력으로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고 바이러스나 세균이 발견되지 않아 다른원인이 있을것으로 추측하게 된다. 결국 이들의 노력은 정부의 조사로 이어지며 환경부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가습기살균제의 주성분인 PHMG는 정화조 청소목적이며 흡입은 안되는 성분인게 밝혀진다. 





제조사는 폐질환과 관련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이후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주목하게 되었고 제조사의 폐질환 관련성 부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항간에서는 세척용으로 씻어내는 제품을 오류로 가습기 첨가제로 사용하여 사고가 발생했다고 오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품어디에도 씻어낸다는 설명은 없었고 가습용물에 함께 넣어 사용하는 제품으로 되어있다. 세정제가 아닌 살균제라고 표시되어 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설명도 다수 붙어져있으며  가습기 살균제 형태가 허가되 출시된 나라는 전세계 한국이 유일하다.(전문가는 살균제 형태 제품을 사람이 흡입하게 설계한것 자체가 코미디라는 의견도 있다.)




 

첫 제품승인은 1996년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에서 생산이 시초다. 흡입시 해로울수 있다는 내용은 있으나 추가자료 제출이나 유독물 지정은 되지 않았다. 관리주체인 정부 역시 문제를 들어냈는데 옥시측연구소장이 2003년~ 2006년까지 정부의 공산품안전심의위원으로 활동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영국본사와 한국지사는 별개라는 옥시의 해명이 있었으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같은 관계임이 확인되었다. 이밖에도 부작용관련 글을 옥시 자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삭제관리한 사실이 드러났고, 현재 기존법인 해산후 유한회사로 새롭게 설립 운영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옥시는 전직원 포상 태국여행에 논란 후에 영국본사 ceo가 한국방문후 가족에게 사과하며 일단락되는듯 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사과가 아닌 유감이라는 발언과 우리를 만나기 위해 그많은 약속을 취소했다 대단하지 않으냐는 제스처를 취해 유가족 및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고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신현우 전 옥시 대표이사가 사과문을 발표하고 난후 변호사에게 내 연기 어땠어요? 발언이 검찰직원이 듣고 알려지며 논란 후에 "내 얘기 어땠어요"라고 말했다며 해명했지만 역부족이였다. 





외국인 전대표와 임직원 5명을 소환하려고 했으나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로 일관 전 마케팅 담당이사는 아이에게 안심 문구 사용이유를 한국어를 못해 몰랐다고 한다.옥시 본사개입 의혹들이 포착되며 옥시 본사 ceo가 사과하기에 이른다. 힘들게 사과를 받아냈지만 이역시도 유엔까지 나서서 비난한 결과라는 의견이 많다.


이후 대기업 유통마트들이 추가 물량 비발주로 불참에 동참했으며 신현우 전대표와 책임자 4명이 구속된다. 관심이 역시 많이 식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많은 관심이 필요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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